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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촛불시위 한국의 변화

유리타 2016. 12. 2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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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촛불시위 한국의 변화

 

 

안녕하세요~ 유리타입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업로드가 좀 늦어졌네요.

요즘 일하느라 바빠서 

 

이번 편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촛불시위의 시작부터 과정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14년 전 광화문에서 분노의 촛불이 켜지고 있었다

광화문 길을 꽉 채운 촛불

이전의 대한민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당시 15살이던 미선이와 효순이는

친구의 생일파티를 가기위해 걸어가던 도중

54톤 미군장갑차에 치여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주변이 환한 오전시간인데다 아이들의 옷차림은

눈에 띄는 색의 옷차림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장갑차를 운전했던 미군은 걸어다니는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답했다

장갑차의 구조상 운전석에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걸어가는 사람을 볼 수 없었고

운전병을 통제하던 관제병은 무전기가 고장나

알릴 수 없었다 답했다

 

 

 

하지만 사고를 목격했던 주민들의 말은 달랐다

사고가 나기 전 맞은편에서

또 다른 장갑차가 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교차를 하면 장갑차가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상황

결국 맞은 편에서 오는 장갑차를 피하기 위해

급하게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예고된 비극.. 하지만 당시 미군들은

주민들의 안전을 보호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해 2월 동계올림픽에서 오노 선수가 헐리웃 액션으로

김동성선수의 금메달을 가로채면서

월드컵에서 우리 한국선수들이 골세레머니로

이를 풍자할정도로 반미감정이 달아 올랐을 때였다

저 당시 제가 중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오노 영상 한참 봤었던 기억이 나네요

 오노 괴롭히는 게임까지 나와서

저도그 게임 엄청했었는데...ㅋㅋㅋㅋ

전에 오노랑 김동성선수 같이 찍은 사진봤는데

진짜 ㅋㅋ보살이다 싶었던...

 

 

 

당시 미군은 사건을 빨리 무마시키기 위해

유족들에게 장례식부터 치르라고 종용했고

그약속을 한 미사단 공보실장 현역 미군이었다

그 사람의 이름도 오노였다

오노라는 인물들이 원래 싸가지가 없나봐요

 

 

하지만 장례식을 치르자 마자 면담을 거부하는 건

물론, 한국 경찰과 함께 하기로 한 합동조사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분노한 사람들이 미군부대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고 맨 앞을 지킨 것은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당시 SOFA 규정에 따라 우리 정부는

수사권조차 없는 상황

 

시민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법무부에선

미군에게 재판권을 요청했지만

미군은 이마저 거부했었다

 

 

 

 

재판은 5개월이 지난 후에야 열렸고

유족과 시민단체는 재판방청을 요구하며

미군부대 앞에 모였다

그런데 항의하는 시민들로부터 미군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한국경찰이 자국민들을 폭행하기 시작한거다

방청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내면서

진행된 재판의 결과는 운전병과 관제병 모두 무죄였다

 

 

 

미군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통신장애는 없었다

이런 개XX.XXXX 옛날 일인데도 열받네요?

끝까지 한국을 기만한 미군...

 

두 미군은 그렇게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 사건으로 엄청난 인파가 광화문 앞에

촛불을 들고 모여들었다

1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두 여중생의 죽음에

무책임한 국가에 촛불을 들었던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존재라는 준엄한 경고

그것이 우리가 촛불을 점화시킨 이유였다

 

 

당시 미순이효순이사건 때

의정부지역활동가였던 제종철씨

사건 발생 초기 단순 교통사고로 덮일뻔 했던

사건을 공론화 시킨 사람이

바로 제종철씨였던 것이다

진짜 멋지신 분입니다.

 

 

 

촛불 하나의 힘이 이렇게 크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그런데 2003년 12월 20일 여중생 사건이

무죄판결을 받은지 1년째 되던 날

제종철씨는 의정부 승강장에서 25미터 떨어진

선로 위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를 발견한 사람은 의정부 막차를

운행하던 기관사였다

선로에 사람처럼 있는 물체를 발견하고 급히

제동을 걸었지만 그위를 지나치게 되었고

그를 끄집어 내 119를 불렀지만

그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한다

 

당시 시신의 상태는 누워있었고

시신의 상태를 봤을 때도 열차에 치인

흔적으로 보긴 어려운 상태

 

 

거기다 기관사가 그를 봤을 때

똑바로 누워있었던 만큼 열차에 부딪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부검 결과 흉부손상으로 인한 과다출혈

척추 쪽에 강한 충격이 가해지면서 대동맥이

파열되었던 것이다

 

좌측 발목부위가 골절인 상태

엎드린 상태에서 열차에 치였는데

발목부위에서 골정이 됐는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전문가의 답변 열차 뿐 아니라 자동차 사고나

추락 같은 경우 충분히 가능한 손상이라고 답했다

 

 

 

처음엔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단 1%의

가능성도 없다고 입을 모아 답했다

 

 

 

그날 제종철씨는 미군의 무죄판결 1년을

맞이해 의정부에서 다시금

촛불집회를 열었다고 한다

집회 사람들과 호프집에서 술을 한잔

마신 뒤 헤어진 건 11시가 조금 넘을 무렵

그가 향한 곳은 의정부역 뒤편에 농성장을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혼자 걸어가면서

11시 10분 경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당시 그를 발견 한 곳은 승강장에서

꽤 떨어진 선로에 발견되었지만 승강장으로

간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남은 방법은 역을 통과하지 않고

선로로 가는 방법이 있지만 당시 선로변

담벼락은 2미터 높이에 막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선로를 넘어가려면 2미터 담을

넘어가야 했던 것이다

 

 

 

당시 평소답지 않았던 제종철씨와의 마지막

전화 통화..

어쩌면 아내와의 통화가 끝나갔을 쯤

누군가와 만났던 것이 아닐까?

전화를 끊은 16분부터 선로에 발견된 53분

37분동안 그에겐 무엇을 했던 걸까?

 

 

 

그 37분이란 시간속에 그의 죽음과 연관된

누군가가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하지만 경찰은 제종철씨의 죽음을 사고사로

결론 짓고 수사를 종료했다

누가봐도 미심쩍은데 ... 참.....

 

 

 

 

당시 2008년 10월 13일 국정감사장에

한 아이어마가 참고인으로 불려 나왔다

유모차를 끌고 시위하는 엄마들

하지만 경찰은 아동학대라는 이유를 대며

이들을 수사하기 시작했었다

광우병 소고기에 대한 불안감으로 거리에

나온 엄마들에게 쏟아진 아동학대와

배후세력논란...

 

 

당시 이들에게 적용된 죄목은

시위했다는 집시법10조와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했다는 교통방해죄

그 당시 시위에 나온 사람들을 무차별로 연행했고

연행된 사람들 대부분 기소가 됐으며

집요한 재판으로 고액의 벌금형이 선고되었던 것이다

당시 촛불집회때 자동차연합 회원들 또한

고액의 벌금을 문것은 물론 면허까지 취소되어

직장을 잃었다고 한다

 

아휴.. 수년간 재판을 통해 고액의 벌금을 냈다는

자동차연합 회원들 ....

 

 

 

경찰이 막거나 폭력이 없어지자 차분해진 집회

그리고 촛불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국정농단 사건으로 다시금 세월호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아이들이 거리에 나와

시위를 시작하게 되었다

 

 

폭력없는 시위로 정권을 바꿔보자구요!

제가 너무 피곤해서 ㅠㅠ 출근을해야해서

제대로 쓰지 못했네요 ..

저는 이만 자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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